고봉수 감독의 신작 '귤레귤레'가 2025년 6월 11일 개봉합니다. 튀르키예의 낯선 풍경 속에서 재회한 두 인물의 감정이 조금씩 흔들리며, 관계의 복잡함과 인간적인 솔직함이 드러납니다. 배우 이희준, 서예화가 연기한 대식과 정화, 그들의 여행이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건넬지 함께 살펴봅니다.
영화는 낯선 땅 튀르키예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 정화와 대식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정화는 알코올중독인 남편과의 재결합을 위해 이 여행에 참여했고, 대식은 고집 센 상사와 출장을 온 상황입니다. 수년 전 대학 시절 절친이었던 이들은, 대식의 고백을 정화가 거절한 후 멀어졌던 관계입니다. 같은 벌룬 투어에 함께하게 된 그들은 처음엔 어색하게 서로를 외면하지만,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점점 과거의 감정들이 다시 떠오릅니다. 사소한 오해와 우연한 대화는 결국 두 사람의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이 영화는 한때 멀어진 인연이 다시 교차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안에 숨어 있던 감정의 결들을 섬세하게 펼쳐 보입니다.
고봉수 감독은 사람 사이의 미묘한 틈을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포착하는 연출로 독립영화 팬들의 지지를 받아왔습니다. 그의 전작 '델타 보이즈'나 '튼튼이의 모험'은 작지만 진실된 이야기를 통해 많은 관객들에게 울림을 안겼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고봉수 감독은 격한 감정의 충돌보다는 내면의 변화와 정서적 여백을 따라갑니다. 관광지의 화려한 장면보다는 인물의 표정과 침묵에 머무는 카메라의 시선은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을 끌어냅니다. 그의 연출은 늘 과장보다는 절제에 가깝고, 관객이 그 빈 공간 속에서 스스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깁니다.
정화와 대식은 삶에 지친 현실을 안고 있는 인물입니다. 정화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겪었고, 대식은 직장과 인간관계에서 불편함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이 재회한 여행지는 낯설지만, 그 속에서야말로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환경이 됩니다. 서예화는 정화의 무거운 감정을 절제된 표현으로 풀어내며, 이희준은 현실에 피로함을 느끼는 대식의 복잡한 감정을 유머와 체념 사이에서 오갑니다. 둘은 가까워질 듯 다가서다가도 조심스럽게 멈추는 관계를 통해 현실 속 인간관계의 거리감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벌룬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는 장면입니다. 말이 없어도, 그 침묵은 과거와 현재의 감정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관객은 이 조용한 한 컷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가 가진 무게와 미묘한 흔들림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귤레귤레(Güle Güle)'는 티르키예어로 '안녕히 가세요' 또는 '웃으며 떠나세요'라는 뜻을 가진 인사말입니다. 떠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이 말은, 단지 작별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등을 밀어주는 다정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제목으로 이 말이 선택된 이유는 명확합니다. 정화와 대식은 감정을 마주하고, 서로의 상처를 알아가며, 결국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여정 속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귤레귤레'는 이별의 아픔보다는 서로를 이해한 뒤 전하는 평온한 인사로 읽힙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짧은 단어가 한 편의 시처럼 마음속에 오래 남습니다. 이 인사는 관계를 끝내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품고 떠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작별이 됩니다.
'귤레귤레'는 장르적 틀을 넘어서는 관계의 영화입니다. 사랑과 우정, 회한과 용서가 얽힌 이 이야기는 사람 사이의 균열을 관찰하고, 그 틈을 채우는 망설임과 침묵을 조심스럽게 포착합니다. 고봉수 감독 특유의 절제된 유머와 배우들의 진심 어린 연기가 어우러진 이 영화는, 다가오는 여름, 당신의 감정을 잔잔히 흔들지도 모릅니다. 극장에서 꼭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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