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리뷰, 이 감정은 사랑일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감정의 이름을 고민하는 두 남성의 관계를 통해 사랑의 본질을 섬세하게 탐구합니다. 원작 소설과의 차이, 도시의 역할, 감정의 모호함을 시적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퀴어 로맨스를 넘어 인간 내면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제시합니다. 사랑에도 공식이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연애와 우정을 구분하고, 관계의 이름에 익숙해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 틀을 아주 부드럽게 비껴갑니다. 김고은과 노상현, 두 배우가 그려낸 감정의 미묘한 결은 "이건 무슨 관계일까?"라는 질문을 끝내 남깁니다.
 

장흥수와 재희, 서로 다른 외로움이 만나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두 남성, 장흥수와 재희의 관계를 따라갑니다. 대도시 서울은 인물들의 내면을 반영하는 배경이 되어주며, 이들의 감정이 조금씩 겹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장흥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지만, 마음속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갈증을 품고 있습니다. 그는 매일을 버텨내듯 살아가고 있으며, 특별한 기대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진 인물입니다. 반면 재희는 보다 자유롭고 직설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사회적 시선에 덜 얽매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대비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흥수는 재희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감추고 있던 감정에 직면합니다. 단순한 호감 이상의 미묘한 끌림, 서로 다른 결핍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둘만의 공간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이 감정이 과연 사랑인지, 아니면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무언가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영화는 바로 이 모호함을 포착합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전형적인 퀴어 로맨스 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대신 사랑이라는 감정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흥수와 재희는 서로를 통해 위로받기도 하고, 동시에 상처받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미묘한 감정선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시선과 행동, 거리감을 통해 드러냅니다. 도시 속에서 이들은 소리 없이 관계를 쌓아갑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에 둘이 서 있어도, 오히려 더 고립되어 있는 것 같은 감정. 서로 가까워지지만 여전히 닿지 않는 거리.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영화는 긴 대사 없이도 강하게 전달합니다. 관객들은 그들이 교환하는 짧은 눈빛 하나에도 숨겨진 감정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원작 소설과 영화가 그려낸 감정의 차이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소설의 영상화가 아니라, 감정선과 인물 해석에 있어 확실한 변주를 가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만의 독자적인 분위기와 메시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 '영'이라는 이름의 인물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투영된 인물입니다. 그는 사회적 시선에 늘 긴장하며 살아가고, 사랑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집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영의 내면 독백과 감정 변화가 매우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반면 영화는 장흥수라는 인물을 통해 감정을 훨씬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흥수는 소설 속 영처럼 감정이 격렬하게 분출되기보다는, 침묵과 머뭇거림 속에서 조금씩 변해갑니다. 영화는 말보다 행동, 표정, 공간의 활용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보여줍니다. 또한 소설이 보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사랑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영화는 외로움이라는 보편적 감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재희와 흥수의 관계는 사랑의 이름을 붙이기 전,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처럼 그려집니다. 이 점에서 영화는 퀴어 서사를 넘어 인간관계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감정의 밀도 역시 다릅니다. 소설이 감정을 밀어붙이는 힘이 강하다면, 영화는 감정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런 차이는 각각 매체가 가진 특성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문학이 독자의 내면을 파고든다면, 영화는 시각적 언어로 여백을 남깁니다.

대도시 서울과 감정의 거리, 사랑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투영하는 거대한 존재로 설정합니다. 이 도시는 장흥수와 재희의 감정선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거리와 연결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서울은 거대하고 복잡하며,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흥수와 재희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더 외로워지고, 가까워질수록 더 불안해지는 아이러니한 감정이 도시에 의해 증폭됩니다. 영화는 롱테이크, 광각 촬영, 어두운 조명 등을 활용해 이 공간의 압박감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도시는 이들의 관계를 끊임없이 시험합니다. 흥수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습니다. 재희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역시 마음속에 쉽게 드러낼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향해 다가가려는 시도는 주변 세계로부터 끊임없는 방해를 받습니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영화는 사랑이란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부각합니다. 특히 퀴어 정체성을 지닌 이들에게 도시는 끊임없는 긴장과 경계심을 요구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사랑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흥수와 재희가 함께 걷는 장면, 짧게 스치는 손끝, 머뭇거리다 결국 말을 삼키는 순간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이름을 얻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퀴어영화일까?

이 작품은 관객의 해석에 따라 퀴어영화로도, 인간관계에 대한 서정적 이야기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영화는 전통적인 사랑의 형태를 넘어 다양한 관계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재희와 흥수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나 사랑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을 담고 있으며, 이는 관객들에게 현대 사회에서의 관계의 다양성과 복잡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두 인물 간의 감정은 단순히 연애가 아니라, 동반자적 관계, 보호 본능, 자기 연민 등 다양한 층위가 섞여 있어 단순히 퀴어로 좁히기 어렵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또한, 영화는 성소수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인물들의 감정과 선택을 통해 자연스럽게 퀴어코드를 녹여내며, 관객들이 편견 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다양한 관객층에게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출처: CGV 공식 홈페이지(https://www.cgv.co.kr/)

 
'대도시의 사랑법'은 많은 걸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많은 걸 느끼게 합니다. 모든 것을 잔잔하게 흔들어 놓는 영화입니다.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있다면, 이 작품은 당신에게 꼭 필요한 감정의 조각 하나가 되어줄 것입니다.